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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춘천막국수맛집] 옛맛 그대로의 막국수 원조집, 실비막국수

막국수의 고장 춘천이 전철과 iTX의 개통으로 서울 근교처럼 가까워 졌다. 주말이면 어느 교통편이든 등산복차림의 나들이객과 젊은이들로 가득 차고 넘쳐난다. 경춘선과 이어지는 유원지와 등산로 춘천시내 카페와 음식점들이 서울사람들 차지가 됐다. 커피전문점 창가에 노트북을 펴놓고 앉아 과제물을 정리하며 주말나들이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자연스런 현상이 되고 있다. iTX로 즐기는 이색 기차여행과 조용한 거리풍광 소박한 맛을 내주는 춘천막국수와 얼큰한 닭갈비까지 참으로 신선한 주말 하루를 만끽할 수 있게 됐다.

실비막국수는 1968년 문을 열여 2대 45년을 이어온 춘천막국수의 원조집이다. 막국수 한 가지를 대물림하며 실비로 말아낸다고 해서 이름이 실비막국수다. 창업주 이태식(2005년/88세로 작고) 할아버지의 손맛을 장남 이창훈(54)씨 부부가 대물림해 옛 그대로의 고유한 춘천막국수를 말아내고 있다. 서울이나 다른 지방의 막국수에 비해 사리가 넉넉하고 고명도 제대로 얹어내면서 값은 여전히 실비다.

창업주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곳 막국수가 각별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할아버지는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는 양식조리사로 일본인 식당에 몸담았었고, 해방이 되고 6·25전쟁이 나면서 월남해 부산에 머물다가 대구를 거쳐 고향근처인 인천에 머무를 때, 맥아더장군의 숙소에 불려가 조리사로 근무하기도 했던 남다른 경력을 지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향에 돌아갈 길은 여전히 막연했던 할아버지는 실향민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춘천을 찾아갔다가 손 댄 것이 뜻밖에도 전공이 아닌 막국수집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메밀음식에 익숙한 원주민들과 월남한 실향민들 그리고 군인가족들의 취향에 적중하면서 큰 성공을 일궈냈다. 춘천에서 막국수집 간판을 처음 내건 집이면서 그 명맥을 꾸준하게 지켜냈다.

춘천막국수 원조집에는 이런 내력이 깃들여 있다. 실비집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을 지켜본 주변의 음식점들이 너도나도 막국수집 간판을 내걸었고, 한 때 춘천시내에는 1백집이 넘는 성황을 이룬 적도 있다. 그 여세가 오래 지속되면서 막국수하면 춘천을 꼽을 정도로 춘천을 상징하는 향토음식으로 다져졌고, 이제는 어디를 가든 막국수집 간판에는 춘천막국수란 이름을 넣어야 손님들이 인정해줄 정도로 전 국민이 즐기는 한식메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초석을 놓은 원조할아버지의 경영원칙은 매우 철저했다. 평생 주방에 조리사를 따로 둔 적이 없이 부부가 직접 국수를 누르고 손님을 맞았다. 내손으로 만들어 언제나 꼭 같은 정성이 깃들인 맛으로 손님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마음으로 말아낸 막국수는 언제나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정확했고 고객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이런 여세는 수많은 실향민들과 군인가족들이 빠져나간 이후에도 크게 흔들림 없이 이어졌고, 춘천의 원주민은 물론 춘천을 찾는 외지인들도 그 유명하다는 실비막국수집을 다녀온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손님이 많고 적음보다는 내 집을 찾은 손님을 대접 한다는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넉넉하리만큼 담아내고 가격도 다른 곳보다는 언제나 조금은 저렴했다.

이런 소문이 한창이던 1973년, 소양강댐이 준공 되고 제막식을 하던 날 고 박정희대통령 일행이 찾아와 막국수를 즐기고 갔다. 그리고 최규하 전 대통령은 도지사시절부터 만년에는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평생 단골로 찾았다. 막국수집으로는 처음 대통령이 다녀가는 영예를 누렸고, 45년이 흘러간 지금도 그 때 면모가 크게 변한 데가 없다.

원조할아버지는 80을 넘기면서 반평생 지켜온 국수틀을 장남 이창훈씨 부부에게 물려주었다. 이 무렵, 이 씨는 미국에서 전자공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대학에 출강하던 때였다. 깊은 고뇌 끝에 아버지의 유훈을 이어받았다는 이 씨가 막국수틀 앞에 선 것이 어느덧 10년 세월이 훌쩍 넘어섰다. 부모의 손맛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3학년시절부터 내집 막국수를 먹으며 성장해 실비집 막국수 맛의 기준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살려내고 있다고 말한다. 메밀가루의 선별과 손반죽은 여전히 원칙대로 주인의 몫이고 육수는 사골 한 가지를 삶아 우려낸 진국에 배추 동치미국물을 가미해 뒷맛을 마무리 한다. 막국수로 갖춰야 할 기본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더 이상 다른 것이 가미하지 않는다. 상차림은 여전히 간결하다. 막국수 외에 별미 겸 제육과 녹두부침을 준비해놓고 있다. 즉석에서 삶아 깻잎을 곁들인 제육이 소주 맛을 제격으로 살려낸다.

초가집에서 시작한 작은 막국수집이 춘천막국수란 이름으로 강원도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 널리 파급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건강식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씨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무척 자랑스럽고 좋은 선택을 했다는 자긍심을 느낀다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막국수를 즐기는 세상을 구상하며 막국수집을 열기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아무 조건 없이 그동안의 경험과 막국수에 모든 것을 일러주고 있다.

건물도 처음 문을 열 당시는 곧 고향에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크게 손대지 않은 채 사용해왔고, 지금은 수십 년씩 단골로 찾는 고객들이 옛 일들을 회상하며 보다 편하게 다녀가도록 하기 위해 옛 집의 윤곽을 그대로 보존하며, 밝고 청결하게 매만져 원조집의 면모를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고 한다.

100% 순수한 메밀가루 외에 다름 것을 섞지 않아 국수발이 부드럽고 씹을수록 뒷맛이 구수하다. 찬 육수는 주전자에 별도로 곁들여 나오는데, 그냥 비벼 비빔막국수로 먹을 수도 있지만, 주인은 육수를 부어 먹어야 육수 맛이 어우러져 더 제 맛이 난다고 일러준다. 주인의 설명대로 따라하면 춘천막국수의 정확한 진미를 맛볼 수 있다. 40석 규모의 막국수집은 남의 손을 많이 빌리지 않고도 부부가 운영할 수 있고, 부인 서희경씨가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아들에게 대물림해 3대로 이어갈 생각이라고 한다.

  • 메뉴 : 막국수 6천원, 녹두부침 6천원, 제육 1만5천원.
  • 주소 : 춘천시 소양로 2가 127-1
  • 전화 : 033-54-2472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