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한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하세요? 잠을 푹자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맛있는 음식 또한 확실한 기분 전환이 되죠! 해장은 물론이고 답답한 속까지 시원하게 풀어줄 것만 같은 전주 콩나물 해장국 맛집, 삼백집을 소개해요^_^* 토종콩으로 길러 더 맛있는 콩나물이 곁들여진 국물에 밥 한 공기 꾹꾹 말아 넣고, 화룡점정으로 달걀을 깨뜨려 넣으면 더 맛있는 전주 스타일 콩나물 해장국, 땀 뻘뻘 흘리며 한 그릇 먹으면 속상했던 일도 걱정거리도 다 잊어버릴 것 같아요!

콩나물을 소재로 한 해장국에 지역 명칭이 앞에 붙이는 곳이 전주콩나물해장국, 진주콩나물해장국, 경주팔우정콩나물해장국 등 세 곳이 있다. 그리고 전주 콩나물해자국은 전주한정식, 전주비빔밥 등과 함께 전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주콩나물해장국의 명성이 이처럼 뚜렷한 것은 전주의 타고난 자연환경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그 첫째가 전주콩나물해장국의 고유한 맛을 내주는 콩나물을 꼽는다. 전주는 서해안으로 드넓은 만경평야와 서해바다가 이어지고, 내륙으로 이어지는 임실과 진안 장수 등 산간지역의 들밭은 각종 밭작물들이 풍성하게 난다. 특히 임실과 진안지역의 비옥한 들밭에서 나는 기름진 토종 콩은 전주콩나물을 길러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런 자연조건을 바탕으로 전주콩나물해장국을 빚어낸 원조 콩나물해장국집 삼백집의 서울점이 잠실 석촌호수 앞길에 문을 열었다. 음식맛과 가격이 전주 삼백집과 꼭 같이 정직하고 착하다.

전주시 고사동 삼백집은 1960년대 초, 욕쟁이할머니집으로 이름났던 전주콩나물해장국의 원조집이다. 1947년 개업해 65년간 명맥을 이어온다.

전주콩나물해장국의 원조집 반열에 드는 것은 물론이고, 차별되는 국맛과 24시간 영업을 일관되게 이어오는 등 전주콩나물해장국의 상징적인 의미를 고루 갖추고 있다. 아침운동을 마친 시민들과 출근길 직장인들에게는 아침식사 겸 해장국집이고, 점심과 저녁도 언제 가든 식사가 가능한 곳으로 통한다.

창업주 이봉순(1972년 78세로 작고)할머니는 무던한 인상과 투박하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아무에게나 서슴없이 욕을 툭 내뱉곤 해 고객들을 놀라게 했고, 악의 없이 소탈한 성품이 누구에게나 편안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가게를 열었지만 화제를 모을 만큼 경영도 뛰어났다. 고유한 노하우가 담긴 콩나물해장국은 이른 아침부터 자리가 가득 메워졌고, 가게 이름이 삼백집인 것도, 하루 3백 그릇의 국밥을 준비해놓으면 2~3시경에 다 팔고 3~4시면 문을 닫았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삼백집의 이런 명성에는 고 박정희대통령도 한 몫을 거들었다. 평소 누구에게나 걸쭉한 전라도사투리로 “예라 처먹어라 이놈아” 하며 국그릇을 놓아주곤 하던 할머니는, 근처 호텔에 머물며 흰 Y셔츠차림으로 아침해장을 하러 찾아온 대통령에게도 거침없이 욕을 해댔다는 것이다. 유신정권이 절정을 이루던 60년대 후반 일이다.

할머니는 해장국을 내고나면 생 계란을 바구니에 담아들고 테이블을 돌며 계란을 깨트려 얹어주곤 했는데, 해장국을 낼 때는 그냥 지나쳤던지 해장국을 먹는 박정희에게 계란을 넣어주다가 유심히 내려다보며 “네놈을 어찌 그리 박정희를 쏙 빼닮았냐? 누가 보면 대통령인줄 알겄다 이놈아” 하며 돌아서다가 되돌아보며 ”그래도 그놈은 큰일이나 했지“ 하고 계란을 하나 더 깨서 얹어주었다는 것이다.

얼결에 칭찬과 욕을 함께 얻어먹은 박정희는 빙긋이 웃으면서 돌아갔고,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술자리마다 삼백집이야기로 화제가 됐다. 이후에 할머니의 말씨는 다소 점잖아 졌지만, 그 대신 밀려드는 손님을 치러내느라 욕 할 사이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러고 얼마 후, 1972년 할머니가 타계하자 고객들은 더 사셨을 것을 박정희 땜에 일에 지쳐서 일찍 세상을 떴다고 했다.

이렇게 할머니가 손을 놓으면서 그 손맛을 자녀들에게 대물리지 않고 함께 손을 맞잡았던 방복순(작고)할머니에게 물려주었다. 삼백집은 거의 비슷한 연배인 원조할머니와 방 할머니 두 사람 손맛으로 이뤄냈다. 지금 주인 조정래(68)씨의 어머니다.

원조할머니는 삼백집 음식은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어서 음식을 제대로 만질 줄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의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차분한 성격을 지닌 방 할머니는 가게 운영을 아들 부부에게 맡기고 좀처럼 얼굴을 들어내지 않았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나면서 80년대를 맞았고, 1~2차 경제개발기획이 달성되고 사회전반적인 경기가 활발해지며 가게도 크게 전환기를 맞았다.

80년대 초 방 할머니마저 손을 놓으면서 주방은 음식솜씨를 타고났다는 조 씨의 부인 김분임(66)씨 자매가 맡아 지금까지 이어온다. 주방장격인 김옥임(74)씨가 올해로 31년차 국솥을 지키고 있다.

국 맛과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다. 엄밀하게 따지면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 경영능력이 탁월한 조 씨는 콩의 명산지인 임실군 콩 재배 농민들과 영농조합을 설립하고 맛있는 콩나물을 대량생산해내고 있다. 그리고 시원한 콩나물국의 노하우를 정리해 전국 어디서나 꼭 같은 콩나물해장국을 맛볼 수 있도록 직영점 형태의 분점을 열고 있다. 그 첫 서울 가게가 잠실삼백집이다.

두 할머니가 끓여내던 당시는 술꾼들이 들어서면 아예 국그릇에 모주를 한 컵 붓고 흑설탕을 한 스푼 수북이 떠 넣어 휘휘 저으며 거품이 피어오르도록 화끈하게 끓여, 밥을 한술 말고 거품을 훅훅 불어내며 들고 나와 손님상에 올려주었다. 버글버글 끓을 정도로 뜨거운 국물을 훌훌 떠 마시며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그 시원한 뒷맛이 할머니의 걸쭉한 욕도 오히려 후련하게 느껴질 만큼 속이 확 풀리고 했다.

지금은 전주의 어디를 가든 그런 감각을 흉내 낼만한 인재를 찾을 수 없고, 더욱이 욕쟁이할머니의 소탈한 마음과 감각적인 국 맛은 삼백집 콩나물해장국을 상징하는 흘러간 전설로 남았다. 그래도 아직은 전주 삼백집하면 예나 지금이나 전주에서 24시간 언제 가도, 시원한 콩나물해장국 한 그릇을 믿고 먹을 수 있다는 믿음과 정직하고 착한 가게라는 평판만큼은 변함이 없다.

삼백집
  • 주소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454-1
  • 전화 063-284-2227
  • 주요메뉴
    • 콩나물국밥 : 5천원
    • 모주 : 1천5백원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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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 삼백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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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
댓글
  1. 주상수 2016.08.29 16:14  수정/삭제

    욕쟁이 할머니 작고하신 연도가 잘못된것 같습니다. 1977년 쯤 작고하신듯   댓글달기

  2. ㅍㅀ 2019.08.28 17:04  수정/삭제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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