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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홍천맛집] 영변막국수 - 야채국물에 말아내는 강원/평안 산간지방 손 메밀국수

영변막국수는 막국수의 고장 강원도에서 내력이 가장 오랜 집이다. 1962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월남한 실향민 김관태(작고) 씨가 홍천읍 신장대리 홍천 5일장에 막국숫집 간판을 내걸면서 시작했다.

춘천막국수의 원조집으로 손꼽는 실비막국숫집보다 6년 앞선다. 이렇게 시작한 평안도식 막국수는 김씨가 20년 가깝게 이어오다가 1978년,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화자(73) 씨 가족에게 물려주었다. 이씨가 가게를 물려받아 지금 자리로 옮겨 온 지가 올해 35년. 옛 그대로 막국수 한 가지만 말아내며 명맥을 잇고 있다.

간혹 소주나 막걸리를 찾는 손님들을 위해 안주 겸 제육을 준비해놓고 있지만, 점심손님들이 여러 테이블 다녀가는 날은 일찌감치 동나고, 예약손님이 없으면 더 이상 삶지 않는다. 순수한 옛날 막국숫집의 면모가 창업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소박한 산골마을 막국수집이다.

메밀가루가 대량으로 필요하지 않아 공장제품보다는 홍천시장에 나는 통 메밀을 필요한 만큼씩 구매해 방앗간에서 직접 제분해 사용했는데, 방앗간 주인이 춘천으로 옮겨가 제분업을 벌이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그곳에서 보내오는 공장제품을 쓰지만 30년 넘게 거래를 터놓고 있어 주인이 알아서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주방일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그 정도로 바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족들이 직접 메밀가루를 손 반죽해, 한 그릇이라도 즉석에서 눌러내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려운 고유한 막국수 맛을 선보인다.

국수를 삶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더욱 실감 난다. 메밀국수는 푹 삶아 뜸이 제대로 들어야 구수한 메밀향이 살아난다면서 펄펄 끓는 국수 가마의 뚜껑을 잠시 덮고 하얀 김이 주방 가득히 뿜어 나오도록 확실하게 익혀 찬물에 두 번 옮겨가며 깨끗이 헹궈 그릇에 앉힌다. 그래서 가게에 들어서면 언제나 국수 삶는 구수한 냄새가 훈훈하게 배나는 옛날 막국수집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온다.

또 한 가지, 영변막국수의 진미를 더욱 확실하게 살려내는 것이 국수를 말아내는 국수국물이다. 영변막국수는 창업 때부터 평안도와 강원산간 오지에 전래해 오던 야채국물을 사용한다. 강원도 내 사냥 붐이 한창이던 70~80년대에는 포수들이 잡아오는 꿩으로 꿩육수를 따로 뽑아 꿩막국수를 낸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겨울철에만 잠시 가능했고, 지금은 그나마 맛볼 수 없다.

물려받은 이씨 부부는 본래 홍천 사람이고 어린 시절 집에서 만들어 먹었던 메밀국수처럼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국수국물에 말아내는 담백한 막국수가 가족들의 입에도 맞아, 창업주로부터 건네받은 그대로 신선한 야채국물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모르고 처음 찾았던 손님들도 막국수국물이 참 맑고 개운하다면서 좋아하고, 채식바람이 점차 대세를 이루면서 지금은 서울에서 동해안으로 가는 길에 일부러 예약하고 찾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야채수는 2~3일 간격으로 뽑아 차게 숙성시켜 이틀 정도 사용하는데, 중요한 것은 첫째가 물맛이고 다음은 맛있는 간장과 소금이라고 말한다. 그다음이 싱싱한 무와 대파 양파 등 기본 야채를 꼽는다. 여기에 마늘과 생강, 홍고추 등 양념류가 들어가고 한약재로 계피와 감초가 약간 들어갈 뿐 육류는 일절 넣지 않는다.

이런 재료들을 알맞은 비율로 섞어 단물이 우러나도록 푹 삶아 건져내고 국물만 맑게 가라앉혀 소금과 집장으로 간을 해서 한 차례 더 달이듯이 폭 끓여 완성한다. 이것을 항아리에 담아 차게 식혀 2~3일간 숙성해 하루나 이틀 사용하는데, 이틀 이상 넘기지 말야야 싱싱한 맛이 제대로 난다. 수명이 워낙 짧고 까다로워 주인이 직접 양을 조율해가며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화자 씨는 국물맛을 내는 비결은 채소도 중요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오래 묵힌 간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직접 담가 오래 묵힌 조선간장은 담백한 육수(고기 국물) 맛이 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이씨 가족은 매해 간장을 넉넉하게 담가 큰 독에 보충해주며 알맞게 묵혀서 사용하는데, 장독 밑에 하얀 소금이 얼음처럼 가라앉은 것은 적어도 10년은 훨씬 넘었다고 한다.

수십 년 간장독 관리를 해온 할머니는 혹시나 하는 염려를 덜기 위해, 장광을 옥상에 올려놓고 문을 꼭꼭 걸어 잠근다. 30대 중반에 막국숫집을 물려받아 30년 넘게 반죽을 해온 손은 손가락 마디가 모두 밤알처럼 옹이 박혀 있다. 그 손맛을 며느리 오경희(47) 씨가 대물려 10년 차를 맞고 있다.

대물림을 하고 난 지금도 할머니는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메밀국수는 국수를 잘 삶아야 제맛이 난다면서 며느리의 국수 삶는 모습을 수시로 들여다보는데, 그 감각이 자로 잰 듯 정확하다고 칭찬한다.

  • 메뉴 : 막국수와 온막국수(국수국물을 따끈하게 데워서 말아내는 것), 비빔막국수 6천 원 균일. 제육(1접시)1만 2천 원.
  • 주소 :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갈마곡리 535-3
  • 전화 : 033-434-3592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