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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의정부맛집] 오뎅식당 - 반세기 역사 이어오는 일품 부대찌개 맛

서울의 북쪽 경기도 지역은 지리적으로 주한 유엔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의정부와 파주 문산 동두천은 미군과 연합군의 주력 부대가 주둔했고, 고향이 가깝고 일자리가 시급한 실향민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그 시절, 미군 부대가 큰 곳일수록 시장 경기가 활발했고, 부대에서 유출되는 통조림이나 육가공식품은 먹을 것이 귀하던 때, 최상의 음식으로 대접받으며 양식문화를 탄생시키는 가교 역할도 했다. 버터와 치즈 햄 소시지를 비롯해 커피와 과자류까지 유엔군 부대에서 유출되는 것이 시장을 주도했다.

여기에다 군부대 양식당에 취업해 타고난 손재주와 근면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은 주방장과 조리사로 승격하여 역량을 발휘했다. 이렇게 배양된 양식 전문가들은 국내 유명호텔과 레스토랑, 제과제빵 분야의 발전을 이끌면서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해냈다.

이처럼 6·25전쟁은 우리 음식문화에 획기적인 전환기를 열어주었다. 사대문 안 반가 음식과 북한 피난민들이 들고 내려온 온갖 향토음식이 서울과 부산 대구 등 대도시의 길거리 음식으로 펼쳐졌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주둔하는 지역에는 서양음식과 포장된 서양 식재료를 좌판에 쌓아놓고 판매하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부대찌개 역시 6·25전쟁을 배경으로 등장한 경기도 지역의 별미찌개다. 그 진원지로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의 오뎅식당이 구체적인 내력을 지니고 있다.

오뎅식당은 1960년대 초. 주인 허기숙(78) 씨가 28세 때 문을 열었다. 지금 자리에서 좀 더 바깥쪽에서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로 시작했고, 그때 이름을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저녁시간이면 부대 근로자들이 찾아와 오뎅 그릇을 받아놓고 간단히 요기를 하며 단골이 되었는데, 어느 날 햄과 베이컨, 소시지를 내놓으며 찌개 좀 끓여달라고 한 것이 지금의 의정부 부대찌개의 시원이 되었다.


허씨는 이들이 가져온 햄과 소시지를 적당히 썰고, 기름에 구워놓은 쇠고기 뭉치(스테이크)를 자근자근 다져 안치고, 파와 배추김치, 두부 등을 적당히 넣은 뒤 양념을 하고 간을 맞춰 국물이 자박하게 볶아주었다. 처음 만든 즉석요리는 적당히 얼큰하면서 담백한 맛으로, 막걸리와 소주 어디에든 제격으로 어울렸고, 양이 좀 모자라다 싶으면 두부와 김치 파 등 찌개거리를 추가로 썰어 얹고 국물을 부어 다시 바글바글 끓이면 얼큰한 찌개 안주로 누구나 먹을 만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요리가 얼마쯤 지나면서 찌개로 끓여달라는 주문이 늘어나고, 점차 즉석에 끓이는 고유한 부대찌개의 모습으로 굳혀졌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별미 안주로 소문이 나 미군 부대에 출퇴근하는 단골손님들이 저마다 찌개거리를 한 뭉치씩 싸들고 와 쓰고 남을 정도로 주문이 이어졌다. 허씨는 쓰고 남는 소시지와 햄, 쇠고기는 술값에서 빼주고, 남은 재료로 찌개를 끓여 다른 손님들에게도 팔았다. 그 맛이 서울까지 소문이 퍼져 나가 저녁때가 되면 손님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고, 2년쯤 지나고 나니까 지금 들어 있는 건물을 마련할 정도가 되더라고 한다.

허씨는 그 여세가 절정을 이루던 1960년대 말, 흑백TV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들이 차를 몰고 찾아와 의정부 부대찌개의 명성을 더해주면서, 명실공히 의정부의 명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소문은 가까운 동두천과 파주, 서울과 오산, 부평과 인천 등 미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퍼져 나갔고, 가는 곳마다 의정부 부대찌개 간판을 내걸고 손님들이 줄을 섰다. 이렇게 70년대를 넘어서면서 유엔군의 철수가 시작되고, 부대손님들이 떠나면서 식재료 확보가 어려워지자, 이때 많은 부대찌개 가게들이 문을 닫는 불황을 겪었다고 한다.

부대찌개는 포장되어 나오는 햄이나 소시지보다 한번 조리해놓은 것이 볶거나 찌개를 끓여도 더 맛이 있었는데, 주력부대가 철수하고 사회가 점차 안정되고 국산 소시지와 햄이 등장한 이후 주변의 시비는 없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날이 갈수록 줄었다. 그래도 어렵게 자리를 지켜오다가 86아세안게임과 88올림픽 등 국제행사가 연이어지면서 식자재 수입이 완화된 것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완전한 한식메뉴로 정착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허씨는 예전에 미군 부대에서 나오던 상표를 들고 수입상을 찾아가 같은 제품을 주문해왔고, 이것으로 찌개를 끓여내자 손님들은 환호하며 다시 찾아오더라며 그 감격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 50년을 이어온 의정부 부대찌개는 더 완벽한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별히 맞춰온 부대찌개 냄비에 세련미를 갖춰낸 찌개거리는 그 품새가 일품요리 수준이다.

그래도 식당건물은 크게 손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가 오랜 단골손님들에게 옛날 분위기를 더 오래도록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60~70년대 손님들이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찾아와 자리를 가득 메워주고 있어, 주변의 대형 부대찌개 집들이 아무리 많이 생겨나도 의식하지 않고 있다. “오뎅식당” 이름은 오래전에 상표를 등록해 고유 브랜드로 인증 받고 있고, 1996년 의정부시가 골목 전체를 부대찌개 거리로 지정해 음식관광지구로 정해주면서, 허씨가 지역발전에 끼친 공로를 인정해 의정부시 문화상을 수여했다.

경기도 북부 기지촌에서 시작해 반세기를 넘기며 어엿한 향토 음식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의정부 부대찌개에는 김치와 두부, 마늘, 고추, 파, 양파 등 채소류와 고추장 등 동서양의 먹을거리가 어우러지는 글로벌한 한식찌개다. 국내 거주하는 서양인들과 아시아 각국의 관광객들에게도 한국의 맛있는 음식 중 하나고 꼽히고 있다. 그 맥이 불고기와 비빔밥에 이어 경기도의 별미찌개로서 한식세계화에도 한몫을 해주었으면 한다.

  • 메뉴 : 부대찌개(2인기준) 1냄비 1만 6천 원.
  • 주소 : 의정부시 의정부1동 220-58(부대찌개 골목)
  • 전화 : 031-842-0423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