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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여의도맛집] 구마산 - 양념갈비로 소주 한잔 즐기며 먹는 맑은 추어탕

양념갈비 그리고 맑은 추어탕. 이 두 음식의 조합이 어떨지 상상되시나요? 옛날 마산 부자들은 짭짤하게 구워낸 양념갈비를 뜯으면서 반주를 한 잔 곁들이고 나서 입가심을 하듯 추어탕을 즐겼다고 하는데요, 이 절묘한 맛의 조화를 즐길 수 있는 여의도의 소문난 맛집 구마산을 소개합니다. :D

구마산(舊馬山)은 여의도 미원빌딩 2층에 있다. 1970년대 중반 여의도백화점 옆에 문을 열고, 그 곳에서 24년을 이어오다가 2002년 자리를 옮겨 다시 10년을 넘어서고 있다. 줄잡아 2대 35년이 넘는 내력을 다져 온 소문난 추어탕집이다. 모든 음식을 8순을 넘긴 신복순(81) 마산할머니가 관장하고 있다. 탕을 끓이는 방법이 옛날 마산 부자들이 즐겼던 방식을 그대로 진행하기 때문에 상호를 '구마산'으로 부른다.

할머니의 추어탕은 미꾸라지의 취급이 남다르다. 할머니는 옛 낙동강철교가 바라보이는 경남 함안군 남지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남지는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낙동강 민물고기의 본고장이다. 지금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잉어회를 내는 매운탕집들이 촌을 이루고 있다.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할머니는 마산으로 출가했는데, 시댁이 마산의 대물림 부잣집이었다. 여름이면 어른들이 계절음식으로 추어탕을 끓여 양념갈비를 곁들여 즐겼고, 그 맛을 그대로 손에 익혔다. 서울로 올라온 이후에도 같은 방법으로 추어탕을 끓여 집으로 초대된 남편의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대접하면 추어탕이 참 독특하다는 칭찬을 수없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손맛을 믿고 1970년대 중반, 여의도에 가게를 낸 것이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어 여의도에 사무실을 둔 국회의원과 재계 인사들, 방송인, 중견 연예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며 줄을 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추어탕은 마산 시댁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내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담백하고 정갈한 상차림과 갈비를 곁들인 색다른 맛이 삽시간에 입소문을 불러일으켰다.

할머니는 미꾸라지가 들어오면 이미 깨끗이 씻어져 오지만, 눈에 들 때까지 충분히 씻어냈다. 그런 다음 미꾸라지를 소금에 비벼 버끔(미끄러운 점액질)까지 말끔하게 벗겨내고 푹 삶는데, 물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 팔팔 끓는 물을 두어 번 더 부어가며 뽀얀 물이 우러날 때까지 끊였다. 할머니는 지금도 맹물도 끓이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믿고 있다. 할머니는 미꾸라지 삶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이처럼 팔팔 끓여서 맛을 낸 물로 음식을 만든다.

삶은 미꾸라지는 채에 걸러 가시를 모두 거르는 남쪽지방의 전통적인 방법을 고집한다. 미구라지 삶은 국물에 물을 첨가하지 않고, 데친 얼갈이배추와 숙주나물을 넣고 다시 한참을 더 끓이면서 다진 마늘을 풀고 간을 넣는다.

파란 배추 우거지가 녹듯이 부드럽다. 아무런 냄새 없이 담백하면서 구수한 맛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끓이고 또 끓이는 과정에서 이뤄낸 열기의 조화라고 한다. 이렇게 끓인 추어탕은 하도 맑고 담백해서 옛날 마산 부자들은 추어탕을 먹을 때 맛내기로 양념갈비를 곁들였다는 것이다. 짭짤하게 구워낸 양념갈비를 두어 대 뜯으면서 반주를 한 잔 곁들이고 나서 입가심을 하듯 추어탕을 즐긴 격이다. 그 맛이 참으로 절묘하다. 추어탕에는 빨갛게 영근 홍고추를 다져 한 수저 얹고 총각김치와 속배추물김치, 전어속젓, 부추겉절임 등이 간결하게 곁들여 진다.

손님들 중에서도 경남 해안가 출신일수록 크게 탄성을 자아낸다. 그래서 한 때는 여의도 금융가에서 경남출신 인사들과 교제를 틀 때, 최상의 장소라고 소문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여의도를 거쳐 간 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 재계와 방송사 임직원들이 은퇴 후에도 10년 20년씩 단골로 찾는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할머니는 그동안 다녀간 어른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손님들이 하도 미안스러워 방에 앉아 있을 때도 돌아앉아 있다고 말한다. 국솥을 지키느라 손님들의 얼굴을 마주할 겨를 없이 국솥만 바라보고 등을 돌린 채 살아왔는데, 손님들은 할머니를 알아보고 몇십 년 전 이야기를 하며 가족처럼 반갑게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마산부잣집 사랑채처럼 단정하게 가꿔놓은 실내 분위기가 선배나 어른들을 모시고 간단한 접대장소로 찾기에 손색이 없다. 10여 년 전부터 큰딸 하정옥(57)씨가 대물림하고 있다.

  • 메뉴 : 추어탕 9천원, 갈비(1인분) 2대 3만원.
  • 주소: 영등포구 여의도동 43(미원빌딩)
  • 전화 : 02-783-3269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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