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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을지로맛집] 숙취로 괴로운 내 속에는 순한 해장푸드 죽, 죽향

아플 때 찾게 되는 죽! 하지만 요즘은 아플때만 죽을 먹진 않죠! 추울 때도, 숙취에 시달릴 때도, 왠지 속이 안좋은 날에도 자연스레 죽을 찾게됩니다. 오늘 소개할 맛집에서는 무려 20년 동안이나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맛있는 죽을 만날 수 있어요. 닭, 야채, 팥 등 다양하고 신선한 재료들이 들어간 죽에는 영양이 가득 담겨있어 처음처럼 한 잔 하신 후 해장하기에 좋을 거예요. 맵고 짠 음식은 오히려 해장에 안좋으니 잔뜩 화난 내 속을 순한 해장푸드 죽으로 달래보아요. =)

새알심을 넣고 쑨 전통팥죽

죽은 선식 또는 환자의 간병식과 보양식 등의 의도로 밥과 구별해 먹은 별식이다. 특히 술꾼들이 주독을 풀 때도 우선은 해장국을 찾게 되지만, 여독이나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죽집을 찾게 되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술을 접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밥처럼 일상으로 즐겨온 음식이 아니어서 취향에 따라 선택할 여지는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주변에 죽전문점들이 곳곳에 박혀있고 죽의 종류도 다양해 여러 날 계속해서 먹어야 할 경우에도 물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죽의 기본은 흰쌀로 쑨 흰죽이지만, 여기에 육류와 조류(닭) 해물 견과류 야채 버섯 등을 첨가해 실로 다양한 소재를 동원해 별미를 살려낸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 짚어보아야 할 것은 죽집을 찾을 때, 맛도 맛이지만 상한 위를 보살피는 의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 죽을 쑤는 죽집 주인의 마음바탕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죽은 조리과정이 밥과 달라 죽의 질감 자체가 부드럽고 독이 없이 순해야 이미 상해있는 위장을 자극하지 않고 감싸주는 효과를 확실하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선한 재료로 정성을 들인 죽이어야 약이 되고 밥이 된다.

죽향은 1993년 개업해 한 솜씨로 20년을 넘어서도 있다.백병원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어, 길 건너 병원을 비롯해 도심의 을지로통과 태평로 광화문까지 젊은 직장인들이 이어지고, 좀 멀게는 강남과 분당까지 두터운 고객층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시간은 일본과 중국 등 아세안계 관광객들이 지도를 들고 찾아와 자리를 메우고 간다.

간의 주독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는 야채죽

주인은 70대 후반인 이죽정(77)할머니와 딸 정명숙(52)씨가 함께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가게 전반을 맡고 있는 정 씨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비롯해 80년대 국내외로 활발한 산악활동을 펼쳤던 여류산악인이다. 그리고 산악인이기 이전에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고 10년 간 영양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래서 산악인 특유의 고지식한 경영원칙과 풍부한 지식으로 남다른 성공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좌)죽집의 기본찬인 무동치미국 우)아작아작 식감을 돋우는 콩나물무침

영양학사의 경력을 바탕으로 직접 창안해 낸 영양죽을 비롯해 18가지 죽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한결같다고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자랑하는 것이 죽향의 죽맛을 애초부터 기틀을 잡아놓은 원조할머니는 문 앞에 “이죽정할머니의 고집” 이란 문구가 나붙을 정도로 음식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이로 소문나 있다.

장아찌와 젓갈 묵은김치가 어우러진 짭짤한 밑반찬

할머니는 맛과 가격대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죽을 쑤는 소재의 산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계절을 놓치지 않고 사전준비를 철저히 한다. 그래서 쌀과 잡곡류 견과류를 비롯해 해산물까지도 신선한 제철 것을 고집한다. 편리한 프랜차이즈에 가입하지 않고 자신의 죽집을 고집하는 이유도, 내 손으로 직접 쑨 죽이어야 믿고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고, 그 답을 확인하는 책임감까지 지켜내야 주인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좌)수시로 담가 내는 싱싱한 제철김치 우)자연스럽게 간이 밴 미역줄기 무침

이처럼 재료 선택이 까다롭고, 가격이 무리가 없고, 음식에 들이는 정성이 남다르다는 인식이 5년 10년씩 찾아주는 고객들에 의해 확인되고 입소문으로 이어져 정직한 죽집으로 믿음을 사고 있다.

죽집의 별미로 곁들인 해물파전

인기메뉴는 전복죽과 문어죽 새우죽 등 해물죽과 전통방식으로 끓여내는 팥죽과 녹두죽 호박죽 야채죽 야채해물죽 잣죽 등이고, 죽 외에 밥 메뉴로 산채비빔밥과 쇠고기콩나물국밥을 내는데, 비빔밥에 얹는 산채도 지리산과 점봉산, 울릉도 등지에서 나는 진품을 고집한다.

화분으로 맑은 실내분위기를 갖춘 죽향

참고로 붉은색이 도는 팥죽을 권하는 이유는 붉은 색깔이 뇌의 중추신경을 자극해 입맛을 돋우고, 특히 팥은 신장을 보완해 이뇨작용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숙취 후에 즐길 만하고, 푸른색이 바탕을 이루는 야채죽과 야채굴죽은 푸른색을 내는 녹즙이 간을 정화하는 효과가 있어 간의 주독을 씻어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흰색 죽으로는 잣죽이 향긋한 잣의 향미가 입맛을 돋우고 든든한 뒷심도 있어 사찰에서도 선식으로 꼽는다.

주인할머니가 직접 그린 손님들 스케치

오전 시간은 주로 일본과 동남아계 관광객들이 주축을 이루고, 점심과 저녁은 인근 병원과 직장인들로 자리가 가득 메워진다. 40석 남짓 작은 공간이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곳인 만큼, 비교적 청결한 편이고 상차림이 깔끔하다.


죽향
  • 주소 중구 저동2가 72-17(2층)
  • 전화 02-2265-1058
  • 주요메뉴
    • 죽 18가지 : 6천~1만 5천원
    • 비빔밥 : 7천원
    • 파전 : 1만5천원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