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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종로맛집] 촉촉한 돼지고기와 아삭한 김치를 한 입에, 장수보쌈

깔끔하고 화려한 맛집도 좋지만 가끔은 골목 구석구석 찾아 들어가 옹기종기 앉아 먹는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해요. 오늘의 처음처럼 추천 맛집은 제대로 삶은 촉촉한 돼지고기와 아삭한 김치로 보쌈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보쌈 맛집입니다. 작은 가게이지만, 친절한 주인 할머니께서 넓은 마음으로 푸근하게 맞아주시는 곳이에요. 어릴 적 김장을 하고 나면, 할머니께서 늘 보쌈에 김치를 둘둘 말아 입에 쏙 넣어주셨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처음처럼과 함께하면 마음이 훈훈해질 장수보쌈! 한 번 가보시면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거예요!

소박하지만, 금방 삶아낸 신선한 돼지삼겹살과 싱싱한 보쌈김치가 어우러진 상차림은 갖출 것은 다 갖춰진 모습이다.

보쌈은 가을김장김치 담그는 날 새참으로 즐기던 별미에서 유래한다. 살림규모가 큰 집일수록 김장하는 날은 수 백 포기씩 절여놓은 배추를 맑은 물에 헹구고 양념을 다져 비벼 넣고 땅을 파 김장독을 묻고, 가족들은 물론 이웃사촌들까지 거들고 나와 허리가 휘도록 분주했다.
차가운 날씨에 온종일 밖에서 힘을 쏟다보면 자연히 허기가 자주오고 출출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뜨끈한 시루떡을 한 접시씩 돌리거나 돼지목살과 삼겹살을 몇 근 사다가 푹 삶아 먹음직스럽게 썩썩 썰어놓고 잘 절여진 배추포기를 쪼개어 샛노란 속잎사귀에 양념을 얹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한 점씩 포개어 둘둘 말아 우적우적 씹으며 막걸리라도 한 대접 마시고 나면 풀렸던 사지에 다시 힘이 충전되고 피로를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먹는 돼지고기 보쌈 맛이 가히 일품이고 보쌈의 진미였다.
이런 날, 집안 어른들에게는 막걸리를 한 되 곁들여 따로 상을 차려 올렸는데, 이런 상차림이 그대로 한식당의 인기메뉴로 옮겨가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통배추가 사계절 나고, 김치냉장고가 생기고 나서는 통배추김치를 한 여름에도 담그고 있어 보쌈 먹는 계절이 따로 없게 됐다
보쌈은 이처럼 잘 절여진 맛있는 배추속잎과 싱싱한 김장양념, 그리고 신선한 돼지고기 삶은 것이 삼위일체로 어우러지고 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 얼얼하고 깊은 맛에 소주가 맑은 물처럼 술술 넘어간다.

잘 절여진 배추와 싱싱한 김장양념이 버물어진 보쌈김치

장수보쌈은 전철 종로5가역에서 청계천을 건너 을지로5가 사거리방향으로 더 진행하다보면 네거리 조금 못 미친 버스정류장 앞에 있다. 2호선 을지로4가역에 내리면 지하로 1블럭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대중교통편은 다소 불편하다. 그래서 일반고객들보다는 방산시장사람들의 단골집으로 명성이 더 높다.

필요한 만큼씩 시장 정육점에서 사다가 수시로 삶아 내는 신선한 삼겹살을 먹음직하게 썰어 별 꾸밈이 없이 담아낸다

하지만 한 장소에서 20년 넘는 내력을 쌓고 있는 만큼, 시장사람들에게는 물론 조용히 다녀가는 보쌈마니아들의 발길도 만만치 않게 이어진다. 주 메뉴는 보쌈백반이고 보다 간단한 식사메뉴로 4천 원대의 백반과 5천 원대의 된장찌개와 비빔밥이 곁들여 있다. 하지만 90%가 보쌈백반 손님이고, 특히 먼데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은 거의 100%가 보쌈백반 손님이다.

김순자(71)씨는 원할머니보쌈 원조할머니의 손아래 올케로 알려져 있다. 성격이 소탈하고 선이 굵은 전라도 할머니 특유의 뱃심과 구수한 호남사투리로 시장의 젊은 직원들에게는 서슴없이 말을 놓고 친 조카 대하듯 한다.

주인 김순자(71)씨는 방학동 원할머니보쌈 원조할머니와 가까운 인척이다. 80년대 중반 원할머니보쌈이 한참 전성기를 이루던 무렵 10년 가깝게 원할머니의 동반자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원할머니보쌈이 본격적인 프랜차이즈사업을 펼치면서 소일삼아 혼자 할 수 있는 규모의 작은 가게를 골라 큰 욕심 없이 시작한 것이 어언 20년을 넘어서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좌) 보쌈에 필수적으로 곁들이는 콩마물국은 매운 혀를 식혀주는 소방수 역할(?)을 한다. 우) 계절감 있는 달래나물

전라도 전주가 고향인 김 할머니는 남도 여인의 타고난 맛 솜씨에다 전성기 원할머니보쌈집에서 익힌 고유한 맛 솜씨를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 보쌈김치와 돼지고기는 물론, 철따라 색다른 밑반찬을 직접 엮어 내는데, 간이 충분히 밴 완연한 전라도음식의 진한 맛이 그대로 진품이다. 소박하지만 고유한 보쌈 맛만큼은 방산시장 상인들이 20년 넘게 인정해주고 있고, 진짜 보쌈의 옛 맛을 알고 찾는 보쌈마니아들이 은밀하게 찾아와 즐기고 간다.

배춧잎에 삼겹살을 한 점 얹고 마늘과 새우젓으로 맛을 한 번 더 돋우면 그 강인한 맛이 보쌈의 묘미고, 얼얼한 뒷맛을 가라앉히는 역할은 소주가 제격.

워낙에 여유 공간이 없는 탓으로 기본 찬은 집에서 미리 마련해 오고, 즉석에서 삶아내 먹음직스럽게 석석 썰어 담아내는 소박한 상차림이 전혀 격식이나 꾸밈이 없이 단순하다. 가까운 시장정육점에서 필요한 만큼씩 수시로 사다가 뭉치 채 삶아놓고 썰어주는 돼지목살과 삼겹살은 청계천변의 지미로 손꼽히던 옛 원할머니보쌈의 비법을 20년 넘게 그대로 살려내고 있는 셈이다. 한 마디로 아무 냄새가 없이 부드럽고 뒷맛이 고소하다.

좌) 매운 풋고추와 멸치조림 우) 전라도음식 특유의 강한 양념과 젓갈이 듬뿍 들어간 파절임

고추양념이 범벅이 된 시뻘건 보쌈김치도 집에서 미리 준비해온 절인 배추에 즉석에서 양념을 비벼 내는데, 간이 꼭 알맞게 짜고 보기보다는 맵지 않은 신선한 양념이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무난하게 어울린다.

메뉴판의 가격이 4천~5천 원대로 부담이 없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직접 챙겨주는 주인할머니는 선이 굵은 투박한 인상만큼이나 자신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듬직하게 몸에 배있고, 웬만한 불편은 군말잔소리 할 여지가 없이 소탈한 식사분위기를 이끌어낼 만큼 내공도 갖춰있다.

1층에 4인용 테이블이 4개, 이층 간이다락에 2~3개가 더 있다. 주차도 집 앞 유료 노상주차장을 이용하면 크게 불편이 없다. 혼자 오는 손님에게도 눈총을 주지 않는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쉰다.

장수보쌈
  • 주소 서울 중구 방산동 84-1
  • 전화 02) 2272-2971
  • 주요메뉴
    • 보쌈정식 1인분 : 9천 5백원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

1940년 평양 출생. 70이 넘은 나이지만 한 손에는 아이폰, 가방 속에는 DSLR 카메라와 태블릿PC를 늘 가지고 다니며 한국 음식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개인 홈페이지 김순경의 한식여행을 직접 관리하고 계시죠. 30년 동안 취재한 맛집이 4,000 곳,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보석같은 맛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고 계신 열혈 대한민국 1호 음식 칼럼니스트. :-)